이야기세상

‘바보 노무현’을 애도하며

dragon180 2009. 5. 27. 01:11

26일 현재 봉하 마을의 추모행렬은 70만 명에 달하고 있다. 전국에서는 2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왕복2차선을 가득 메운 조문객들은 힘든 기색도 없이 2시간 이상 차례를 기다리며 조문을 하고 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과 함께 방문해 마지막 가시는 길을 함께하고 있다.

“미안해 마라”, “원망하지 말라” 등 유언의 내용을 상기 시키며 엄숙한 분위기에서 조문은 계속 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고 자신으로 인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길 원하셨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강한 의지와 정신력으로 많은 귀감을 주었던 그이기에 많은 주변인과 국민들에게 충격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일생은 순탄치 못한 하나의 드라마였다.

가난한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상고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준비해 어렵게 합격한 과정은 그가 얼마나 진념이 강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또한 짧게 판사로 근무했고 조세변호사로서 이름을 드높이려고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의 편에 서 그들을 돌보는 인권변호사가 됐다. 그로인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한 나라, 똑바른 나라를 생각하며 어려움을 극복했고 1988년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정치인 노무현의 인생도 너무도 드라마틱하다.

5공 청문회의 스타로 국민들에게 각광을 받다가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변수로 인해 낙동강 오리알이 되지만 지역주의 타파라는 신념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어려운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찾아온 연이은 낙선의 고통을 겪었던 그에게 국민들은 ‘바보 노무현’이라는 애칭을 지어준다.

바보처럼 현실 정치와 타협안하고 굳은 의지와 신념을 지킨 그는 결국 2002년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대통령이 되는 과정에서도 얼마나 많은 기득권층과의 대립에서 이겨내며 어렵게 대통령이 됐다. 국민들은 그런 그를 믿었고 존경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돼서도 끝없는 대립과 갈등으로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되고 만다. 역사상 최초로 탄핵을 당하는 어려움도 겪는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힘으로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며 대통령으로 다시 복귀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가 만들기 위한 대한민국은 우리에게 너무도 맞지 않은 이상적 국가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시도한 정치적 행동은 그가 얼마나 대단한 혁명가인지 보여준다.

대통령 퇴임 후 고향인 봉하 마을로 내려간 그는 “살 맛 난다”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그는 정치인 노무현에서 다시 인간 노무현으로 돌아왔지만 ‘박연차 게이트’라는 암초를 맞이하게 된다. 주변인 하나하나가 구속되고 조사받으며 결국 자신까지 조사를 받게 됐다. 그가 항상 강조한 ‘깨끗한 정치’라는 구호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자존심의 상처와 언론 및 검찰, 현 정부의 압박으로 결국 이러한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게 됐다. 또 그를 지키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했던 우리들 모두가 가해자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끝없이 그를 보기 위해 조문을 하고 있는 온 국민은 ‘노무현은 진정한 서민의 대통령, 국민의 대통령’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한국정치를 깨끗하게 정화 시켰다고 말을 한다.

비록 그는 지금 없지만 고인이 바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모인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되새기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